황교수 사건을 기초과학 종사자가 봤더니... :: 2005/11/26 13:54
황교수 사건 때문에 난리도 아니다.
간간히 들르는 뉴스 사이트에서 보니... 피디수첩이 광고를 못 받을 지경이라고 하는구먼.
솔직히... 뭐가 문제라는 건지, 뭐가 문제가 아니라는 건지 잘 파악이 안된다. 뭐랄까... 골치 아플것 같아서 피해왔던 점도 있고... 피디수첩을 다시보기로 보기도 상당히 귀찮고... 게다가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니 흙탕물에 뛰어들기 싫다는 얍삽함 때문이랄까?
하지만 확실히 느끼겠는건...
'국익' 어쩌고 떠드는 곳에서 파시즘의 똥냄새가 폴폴 풍긴다는 것이다.
물론, 다 그런건 아니겠지... 근데 '국익'을 외치는 글 중에서 여기 저기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글들을 읽어보면... "그 놈들 때문에 일등될 기회를 놓쳤다"는 식이어서... 쩝...
하지만, 피디수첩이 진실을 보도한 용기있는 태도였다는 칭찬을 들을 만한 수준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피디수첩을 직접 보지 않아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줏어들은 방송 내용으로 보건데 편파적이었다거나 선정적이었다는 평가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또한가지... 그동안 이공계, 특히 기초연구자들이 위기감을 느끼는 동안 이쪽에 별다른 관심도 없이 일회성 보도만 하던 언론이 연구원들의 과오에 대해서는 그리 냉정하게...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서 보도를 했다는 점이... 상당히 속상하게 느껴질 수 도 있다. 그야말로... 이공계 연구인력들은 별다른 시스템의 지원 없이 각자 맨땅에 헤딩하면서 버텨오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물론... 예전에 그쪽 근처에 있는 누군가에게서 이 일이 한번 터질 것이라는 얘기를 줏어 들었기 때문에(카더라 통신에 불과하기에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로 확인되니... 쫌 허무하달까) 어차피 무덤까지 들고가기는 어려운 비밀이었으니 외신에 의해 까발려지는 것보다는 국내 언론에 의해 까발려지는게 차라리 모양새가 나은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
외신 반응을 쫌 보고 싶었다. 황교수의 스캔들이 국제 사회에서 어떻게 보일지... 뉴욕타임즈 대문에 관련 기사가 실려 있길래 읽어봤다.
사실 별 얘기 없긴 하더라. 담담히 사실관계 전하고... "난자매매가 이루어진 시점은 이게 (한국에서)불법이던 시절이 아니었다. 연구원이 난자를 제공했는데... 국제 의학 윤리 기준(international medical ethics standards. 이게 명문화된게 있다는 것인지 그냥 관례라는지는 모르겠음)에서도 독립적인 관계에 있지 않은 소속 연구원에게 난자를 기증받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고 한다. 거기에 덧붙여서, 한국처럼 엄격한 서열이 존재하는 연구 환경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는 점 때문에 '의심(?)'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윤리논쟁을 겪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황교수팀은 잘 할 것 같다... 면서 황교수 팀의 연구 업적을 소개하며 마무리 하고 있다.
혹시나 싶어서 국내 언론이 보도한 외신 반응들을 좀 살펴봤는데... 역시 비슷한 정도인 것 같다.
이쯤 되면... '국익'을 걱정하는 사람들 말처럼 지금 까지의 성과와 앞으로의 비전이 모두 물거품이 된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모 유전공학 종사자의 말처럼 '열악한 연구환경 때문에 (돈을 벌 수 있는)응용 연구에 국제협력이 절실한 상황에서 이게 좌절될 지 모르는 상황...' 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하기 어려울 것 같다. 언론에서는 저 정도로... 그다지 비난 섞인 반응이 안보이는 것 같긴 하지만... 딴 맘 품고 있는 다른 나라의 연구진 혹은 국가가 꿍짝을 벌일 생각이 있는지 확인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황교수가 국제 연구진들에게서 왕따 당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게 중요할 것 같다. 황교수가 잘못 한건 잘못했다고 깨끗이 인정하고... 한국 사회에서도 차분한 반응을 보인다면 시기에 가득찬 누군가가 꿍짝을 벌이려고 한다 해서 다른 국가의 연구원들이 여기에 동조하여 황교수팀을 왕따 시킬 맘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찌질하게 굴면 보기 싫어서 왕따에 협력하려 들지 않을까?
이런 상황을 보면서 또한가지 드는 생각이 있다.
이 사건을 보며 내 일처럼 느끼는 이공계 종사자들(황교수 연구 분야의 연구인력 포함)의 분노의 화살이 날아가야 할 곳에 날아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왜 정부한테 아무 말도 안하지?
근본적인 원인이 뭘까.
황교수 혼자 맨땅에 헤딩해야만 했던 상황 아닌가?
연구 지원도 부족하니 주변 상황 살피지 못하고 앞만 보면 달려야 하는 상황. 게다가 프로젝트에 필요한 연구자금을 제공하는 것 이외에도 필요한 지원과 관리 역시 제공되지 않아서 알아서 해야 하는 상황. 그래서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심사숙고할 만한 여유가 없었던 상황.(무작정 남탓만 하자는게 아니다. 이공계 연구인력들이 완벽한 인간도 아닌데... 뭘 잘하고 있는지 뭘 잘못하고 있는지 같이 얘기 나눠줄 상대가 없었다는것 역시 문제 아니겠냐는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면 그동안 업적 위주로만 보도해온 언론의 보도태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뭐 한두번 겪는 일도 아니지만)
좀 더 보태서 설명하면...
이런 열악한 상황이 근본적인 원인 아닌가?
그럼... 언론에 대해 속상한 것은 알지만 그 비난의 일부라도 정부에 돌려야 하는것 아닐까?
솔직히... 그나마 요즘 각광을 받으면서 지원금이 꽤 몰리는 유전공학 분야가 그모양인데... 다른 분야, 특히 기초과학 분야는 얼마나 죽을 맛인지 상상하기 쉬울 것이다.
물론... 이거 정부가 해주기만을 기다려서는 안될 일이다. 정부는 여론을 따라오는 것이지 먼저 선도적으로 나서는 일은... 극히 드물다.
결국 이공계 종사자들이 쟁취해내야 하는 일다.
이번일이 좀 더 긍정적으로 풀리기 위해서라면...
잘나가는 황교수에게 여전히 파격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정부의 약속보다는...
연구인력들을 위한 기본 시스템을 점검하고 만들어 가겠다는 약속이 나와야 하는게 아닐까 싶다.
연구인력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이공계 종사자와 상시적으로 의견을 주고 받는 시스템... 단지 돈을 많이 주는게 아니라, 돈을 어떻게 써야 기초과학이 발전하고 이를 기반으로 응용과학이 튼튼하게 성장할 수 있는지 의논하고 실천하는 시스템 말이다. 지금처럼 기초과학에 대한 관점은 커녕 과학과 공학을 구분하지도 못하는 관점을 가지고 일등에게만 몰아주고 보자는 식의 시스템 말고...
그리고... 연구개발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그야말로 연구개발에만 관련된게 아니라 인간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제들-예를 들어 윤리 문제-에 대해 서로 의견을 주고 받고 상호작용하며 예측 가능한 문제점들을 찾아내고 이를 대비하는 시스템 같은것들 말이다. 이런게 없으니까 황교수가 잘 몰랐다... 하면서 머리를 긁적여야 하는것 아닐까?
그런데.. 역시 이런걸 정부가 알아서 해줄일이 없다는 생각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공계 종사자들 스스로가 뭐가 문제인지 자각하고 손을 잡아야 할일이 아닐런지...
몇년전에... 웃기는 일이 있었다. 사립대학의 기초과학 연구실에 국가 지원이 완전히 끊겨 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이 다가왔다. 이런 발상의 배후에 대해 몇가지 음모론적인 설명을 듣긴 했지만...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진행됐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기초과학 종사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같은 위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끼리 손을 잡고 연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작은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전체 기초과학계와 손을 잡고 싸워나간게 아니라...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몇몇 집단만이 손을 잡았고 살아남으려 했다. 이들끼리는 살아 남는게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보코리아21이라고 불리는 희한한 제도가 나타났다. 서울대와... 그외 극히 일부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제도였는데... 이 제도가 나타나자 그나마 있던 연대의 끈은 사라졌다. '그외 극히 일부'에 우리는 낄 수 있을 것이라는... 100중에 1등은 정해졌고 2, 3등에 턱걸이 하는 것은 가능할 것 같으니... 그렇게 되면 유지하는데에도 힘겨운 지금의연대의 끊을 놔버려도 배터지게 잘 먹고 잘 살수 있을 것 같으니....
연대의 끈은 있었나 싶지도 않게 사라지고 어제 손을 잡았던 사람들은 모두 2,3등을 향한 경쟁자가 되버렸다.
물론 이 희한한 제도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는 않았다. 하지만 경쟁의 대열에서 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과가 나왔다. 당연하게... 4등 이하는 탈락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행동에 나섰다. 하지만... 그 제도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불쌍한 기초과학자들의 허둥지둥 거리는 행동을 보며 비웃기만 할 뿐이었다. 뒤에서는 그 지원 대상자에 들려고 열심이던 사람들이 막상 탈락하고 나니 제도 자제를 비판하는 꼴이라니... 솔직히 우습잖아?
이 얘기를 왜 하냐 하면... 이제 이공계 연구인력 들도 자기 살길만 찾지 말고 다 함께 잘 살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자는 소리다.
다행히 황교수에게 약속된 지원이 모두 이뤄지고 만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나? 아니다. 여전히 세계 일류(우웩~)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는 천재들은 혼자 맨땅에 헤딩해야 한다. 단지 그 소수의 천재만의 문제가 아니다. 천재는 수많은 영재가 있어야만 만들어 지듯이... 튼튼한 기초가 없으면 혼자 맨땅에 헤딩을 열라 잘하는 무지 잘난 천재 한둘이 나타나야, 그 천재에게 전폭적인 지원이 가해지고 이 지원의 줄기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지독한 가뭄에 목을 조금 축이는 정도의 지원에 만족해야만 하는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돈 많이 달라고만 하지 말자. 지금 돈주는 사람들은 잘하는 넘 몰아주는 방식 이외에는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기초과학이 왜 중요한지 설명하고... 두루 두루 연구 잘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다양한 상황에 다양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 이사람이 실패하면 다른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연구개발은 한사람의 천재가 모든것을 가능케하는 행운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협력하고 발전하며 경쟁해야만 꾸준히 성장할 수 있다는 것... 이런것 좀 말하고 살자. 내가 엘리트니까 일단 나한테 돈 좀 달라고만 하지 말고...
다함께 잘 살아야 나도 잘산다는 생각좀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함께 손 꼭잡고 정부에 요구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뭐... "딴 생각 하지 말고 주는 새경만큼 나무나 해와!"라는 소리나 듣고 있어야 할까?
* 참....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더 있는데... 정치하는 과학자가 쫌 나왔으면 좋겠다. 이공계의 위기라고 떠들지만, 정부는 그 해답을 알 턱이 없고, 정작 당사자인 이공계 조차 뭘 어떻게 해야 일이 풀릴지 헷갈리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정치하는 과학자들이 쫌 나타나서 정치 공부도 하고 경제 공부도 하면서 연구개발에 대한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투자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논리도 개발하고 로비도 하고 정책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사람들... 그리고 관료도 될 수 있는 그런 과학자 정치인 말이다. 연구개발 인력이 직접 정치하지 않으면 누가 연구개발에 적합한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을까.
이 생각을 하면... 학장 하겠다는 황교수를 전국민이(전국민은 아니지만) 나서서 정치할 생각 하지말고 본업인 연구나 하시라고 말렸던 그 일이 생각난다. 우리가 노예냐? 일만하게? 정치도 해야지!!
** 한마디 더...
이공계 인력들의 말을 듣다 보면 '차라리 군부독재 시절이 좋았다'는 식의 말을 종종 듣곤 한다. 그 시절의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와 인력에 대한 대우가 좋았던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이런 전폭적인 지원이 가능했던건 그들이 절대 권력자였고 '과학기술 발전이 곧 애국이다'는 (세계 일류를 향한)국가 총동원 체제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의 발전이 인류사회에 가져다 주는 순기능을 논하면서 왜 연구개발에 투자해야 하는지에 대한 건강한 관점은 없었다. 그러니... 이 절대 권력자들이 물러나고 나니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관점은 없고... 합리적이기는 해야 하다보니... 국가에게서 듣는 소리는 "이게 연구하면 돈이 나오냐?"는 소리가 전부였다. 뭐.. 그동안 들어온게 애국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매진하라는 식의 각하의 말씀 밖에 없었으니... 그 얘기 하는 사람이 사라지고 그의 절대 권력이 사라진 상황에서 국가 관료들에게 남아 있는 판단의 근거란... "이거 하면 당장 돈이 나오냐?"는 소리 밖에 없게 되는건 당연한 일 아닌가?
가능하지도 않은 향수에 젖지 말고 이공계 스스로가 논리를 개발하고 설득해야할 일이다. 운좋게 우리에게 우호적인 절대권력자가 다시 나타나는 요행을 바랄게 아니라.
*** 제목이 쫌 안 어울린다. 그다지 기초과학자의 관점에서 뭘 디벼본것 같지는 않은 글이라서....
제목을 저렇게 지은건... 연구개발 분야에 있는 사람이 쓰는 글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는데 적당하게 짧은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저렇게 써졌다.
**** 난 그를 위대한 인격자로 평가하지 않는다. 알고자 하면 다들 알만한 사실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그를 연구자로서의 업적만 가지고 평가하는게 속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글에서는 기초과학에 종사하는 사람의 심정을 그에게 투영하고자 했기 때문에 황교수에게 약간 우호적인 관점에서 썼다.
하지만... 게시판들을 돌아다니며 목격하게되는 '황빠'들의 준동이 역겨울 지경이다. 이글의 태도가 후회가 된다고 느낄 정도이다. 우리나라 언론이 이렇게 만들었나? 이건 광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