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나니 괜히 썼나 싶은 글. 그냥 지울까... 생각하다가 갈팡질팡하는 내 자신을 위해서 공개 결정. 생각하고 표현하다보면 뭔가 감이 잡히겠지. 에라 모르겠다.
사건이 터진지 미국시간으로 이틀 후.
샌드위치를 사먹으러 들어간 어느 카페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점심시간이라 가게에는 사람들이 가득차 있었고 주문을 하는 손님들과 주문을 받는 직원들 사이의 대화로 정신이 없다. 아직도 영어로 대화하는 것은 긴장된 일인데다가 주변의 시끄러운 잡음들 때문에 제대로 주문을 하지 못할까봐 살짝 긴장한 상태로 내 차례를 기다렸다.
내가 주문한 음식들은 전부 받은 뒤 테라네가 북적거리는 샐러드바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테라네가 스프를 주문하려는데 이 직원이 테라네 뒤에 서있던 한 무리의 백인 할머니들의 주문을 먼저 받는다. 인종차별일까? 아니면 하도 정신 없는 상황이어서 벌어진 일일까? 이방인이기에 느끼는 소외감, 혹은 그로 인한 오해, 편견들 때문에 종종 겪는 비슷한 일들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한국에서라면? 한국 가게에서 이런 일들을 겪은적 있던가? 모르겠다. 낯선곳에서 긴장감을 느끼며 사는 삶이기에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에 대해 어떻게 판단해야 옳을지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다.
테라네의 주문을 받던 그 백인 직원이 갑자기 묻는다.
"어디서 왔냐?"
응? 상점 직원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아본적이 있던가? 버스나 전철을 기다리다가 호기심 많고 수다떨기 좋아하는 미국인들(주로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대화꺼리를 찾기 위해 이런 질문을 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아니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나 연구실의 연구실 동료들, 즉 한번 보고 말 관계가 아닌 경우들. 아니... 생각해보면 이런 질문들을 자주 받았었고 이 질문 자체가 우리에 대한 호기심, 우리를 대화에서 배제하지 않으려는 일종의 배려(그런데 딱히 할 말이 없으니까 꺼내는 질문)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질문에 거부감을 느낀적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상점 직원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게다가 그렇게 바쁜 점심시간 때에, 주문을 받느라 바빠서 미국인들이 너무 자주 물어서 오히려 어색하다고 느끼기도 하는 "잘 지내냐?"는 말 조차도 하기 바쁜 이 상황에서 말이다.
테라네가 잠시 주춤한다. 평소 같으면 옆에 서있는 내가 먼저 대답을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나 역시 잠시 주춤거렸다. 그리고 나서 대답을 들은 그 직원의 대답은 짤막했다.
"아, 코리아"
궁금했다. 이 대답을 분명히 들었을, 우리 옆에 서있던 미국 할머니들의 표정. 하지만 얼굴을 쳐다보지는 못했다.
복잡한 생각이 머리속에서 거품처럼 피어 오른다.
내가 한국인임을 밝히는 것에 주춤거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인가? 아니면 과민 반응일까? 그 직원이 우리 국적을 물어본 것은 이번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는 일일까? 아니면 그 직원이 동양인인 우리를 보고 신경이 쓰이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나온 질문일까? 아니면 그는 인종차별주의자이기 때문에 확인을 하고 싶었던 걸까? 사실은 "너 혹시 한국인 아냐?"라고 묻고 싶었던 것일까? 그 할머니들의 수다가 잠시 멈춘것 같다고 느끼는 것은 내 자격지심이 일으킨 오해일까?
범인이 한국인이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몇시간 후, 학부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수업시간. 아무래도 그 뉴스 때문에 감정의 혼란이 왔기 때문인지 평소의 더듬더듬 거리던 수업 진행이 더 엉망이다. 아무래도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수업 직전에 그 뉴스를 읽었기 때문에 적잖이 충격을 받아서 수업 진행이 잘 안된다. 미안하다"라고 짤막하게 말했다. 아니... 그렇게 말했던것 같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한국인 학생이 고개를 숙인체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게 보였다.
지난번에 학교 근처에서 있었던 총기 난사 사건때도 그랬듯이 이 사건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동안의 미국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심각하고 진지한 혹은 자신들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야 하는 대화를 회피하려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었다. 편견일 수도 있다. 곧이 곧대로 믿지 마시길. 하지만, 선거때가 가까울 수록 상대방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질문 같은 것을 하지 않는게 예의 라거나 심지어, 정치와 종교등에 대한 대화를 꺼내는 것 자체가 금기라고 까지 말하는 한 미국인(그 얘기를 전해들은 대부분의 사람들, 미국인들 역시 그 사람이 좀 오버한다고 생각하긴 했지만)도 있었던 것을 보면 정확히 짚어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겉으로 보기에 그렇게 보이는 경향이 있는것은 맞다고 생각하고 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한 학생이 와서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점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 한 학생이 말하고 간다. 그런 사건 하나가 어느나라의 국민성을 반영하는게 아니니까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말한 뒤에 약간의 후회가 느껴졌다. 지금 내가 위로를 받을때가 아닌데,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점 보다는 30명이 넘는 무고한 사람들이 살해당했다는 것 때문에 슬픔을 느낄 그 친구들이 위로를 받아야 하는 데, 뭔가 거꾸로 되었구나. 그 친구들 한테 위로의 말을 먼저 전하는게 맞는 순서였을 텐데. 이럴 때마다 미국 학생들과 속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유창하게 영어를 하지 못한다는 점이 항상 아쉽다. 한국인에 대한 편견을 줄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 아니라...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기에 항상 느끼는 소외감, 내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 즉 관계 형성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사람들이 걱정을 한다. 부모님들도 걱정을 하시고 인터넷에서도 미국 거주 한인들에 대한 걱정의 글을 자주 접한다. 혹은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얘기들이라며 이번 일로 별로 달라질 것은 없다는 글들도 본다.
둘 다 맞다.
이런 사건이 있기 전에도 인종 차별적인 대우는 받아왔었다. 자동차에서 우리를 향해 "아시안"이라고 소리치며 뭐라고 지껄이고 지나가는 젊은 백인들도 있었고 동양계 유학생 조교들에게만 힘든 수업을 배정하는 직원도 있다. 이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인종차별적 언행을 일삼는 교수가 있어서 학생들과 단체로 항의를 했었다는 한인 학생 이야기도 들었었고, 일본인들 때문에 미국 경제가 위협을 받는다며 국적을 묻지도 않은체 길거리에서 욕지거리를 하는 백인을 만나봤었다는 한인 학생들도 있었다.
학교에서 주로 생활하는 만큼 대놓고 차별적인 대우나 위협을 받는 일이 늘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성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일로 어떤 국가와 인종에 대해 편견을 굳히게 되는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길거리에서 만나는 미국인들 역시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은 순진하다. 아무것도 아닌일로 시비를 걸어서 동양인을 공격하기도 하는 미국 거리의 백인들이 이번 일로 한국인에 대한 편견이 더 심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 보다는 밤길을 걸을 때 좀 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게 좀 더 합리적일 것이다. 그리고,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한국인 학생들이라면 더욱. 이미 학교에서 미국 학생들로부터 모욕적인 취급을 받았다는 어린 한국 학생들의 이야기가 들리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그들도 사람이니까. 나는 인종에 대한 편견이 전혀 없는가? 아니, 어쩌면 내 속을 까발려 보면 상당한 인종 차별적 인식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궁금한 것은 미국의 '이성적'인 사람들의 생각이다.
미국은 경멸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본다.
인종 차별적 사건에 대해 그리 진지하고 엄숙하게 인종 차별의 부당함을 성토하던 티비쇼 진행자가 다음 순간에는 삭발을 했다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어리석음을 조롱하며 패널들과 배꼽을 잡고 웃는다. 그녀를 구속복을 입은 한니발로 표현하며 관객들과 함께 조소를 던지는 코미디 쇼도 있다. 거의 경멸적인 평가를 내리며 흉을 보고 있던 상대가 마침 지나가자 지나칠 정도로 아주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미국인의 모습에 충격을 받기도 한다.
그들은 매뉴얼에 충실하다. 그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매뉴얼에 나와 있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 모습이 우리에게는 비합리적이고 앞뒤가 꽉 막힌 모습으로 보인다.
"나는 매뉴얼 대로 했을 뿐이다. 그래서 문제가 생겼다면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여기로 가봐라, 저기로 가봐라",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라는 직원들의 반응에 신물이 날 정도이다.
인종차별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답안을 어려서부터 배워오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매뉴얼 대로 대답한다. "이번 사건은 인종, 국적과 무관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게 그들의 진심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국가 차원의 모범답안이 만들어져 있지 않은 사안들에 대해 그들이 보이는 대응은 가끔 오싹하다고 느낄 정도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미국의 총기 문화의 문제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너희들 그 뒤에 뭔가 감추고 있는게 있지 않니? 그렇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무엇이 정치적인 올바름인지에 대해 모범답안을 내놓고 있는 너희들이 타국과의 전쟁을 원하는 너희 정부를 방치하고 있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심심하면 들려오는 총기 난사 사건들을 접하면서 뭔가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모습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비극을 전하는 뉴스 앵커의 표정과 그 다음 순간 일상적인 뉴스를 전하는 뉴스 앵커의 표정의 차이를 보며 당황해 하던 나로서는 무엇이 그들의 진실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선택을 내릴까.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한 젊디 젊은 국가가 겪는 이런 비극들이 사람들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궁금하다. 그들이 지난 십여년간 겪어온, 차마 상상하지 못했던 끔찍했던 기억들은 그들속의 무엇인가를 폭발 직전의 상황까지 끌고 왔다고 생각한다. 커다란 변화 직전의 팽팽한 긴장. 문턱값 바로 아래까지 도달한 퍼텐셜.
글을 쓰던 중에 조승휘가 NBC 방송국에 글과 사진, 동영상을 보냈다는 기사를 접하고 그의 사진과 동영상을 봤다. NBC 홈페이지 대문에 걸린 총을 양손에 쥐고 고개를 조금 숙인체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그 사진을 보며 현기증을 일으킨다는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건 현실이야."
잔뜩 찌푸린 그의 표정과 알아 듣기 힘든 그의 목소리들 들으면서 울컥거리며 솓아오르는 감정은 분노라기 보다는 슬픔에 가까운듯 하다. 무슨말을 하고 싶은것인지 알 수가 없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니. 왜 너는 이 비극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거지?
내가 그의 마지막 영상과 음성을 보며 느끼는 감정들은 자연스러운 것인가? 나조차 모르고 있던 내 안의 민족주의가 내 감정을 조작하고 있는건 아닐까? 내가 지금까지 써놓은 글들은 모두 헛소리가 아닐까?
"소수인종들을 싫어하는 머저리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그들에게 이 사건은 기름에 불을 붓는 격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니 그런일이 있으면 즉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학교에 상담을 요청해라."
**한가지 드는 생각이...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움추러 들지 말고 평소처럼 당당하게 국적을 밝히자는 생각... 별것도 아니고 당연한 생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