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페미니즘과 노조에 대한 증오 :: 2007/08/24 15:41

여기 저기 돌아다니던 것을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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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과 노조에 대한 증오는 교육붕괴현상의 징후
[하재근]미국적 가치를 신봉하는 집권 민주화세력더러 빨갱이라고 하는 판

하재근(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침략이라고 해야 맞다. 문명의 충돌이라고 하면 마치 대등한 적대적 존재들이 투쟁을 벌이는 것 같다. 요즘 서남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엄연한 침략이다. 문명의 충돌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한 술 더 떠 미국 시민은 문명의 충돌 수준이 아니라 아예 자신들을 피해자라고 인식한다. 호전적인 이슬람에 맞서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거다. 정작 파괴자는 자신들인데 엉뚱하게 남한테 덮어씌우고 잔인하게 괴롭히는 것이다.
  
  첫째, 시민의식의 실종 때문이다. 둘째, 자기들 사는 게 괴롭기 때문이다.
  
  곳간에서 인심 나는 법이다. 관용은 여유에서 나온다. 거기에 더해 교육과 언론, 정치권의 성숙한 리더십이 시민의식을 만든다. 미국은 서양 선진국 중 최악의 양극화 사회다. 나라는 부강할지 몰라도 국민은 가난하다. 동시에 사립 명문 교육기관이 엘리트들을 길러내는 후진적 사회다. 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시민은 길러지지 않고 프로스포츠, 연예물, 일확천금에 탐닉하는 패배자들을 기른다. 그들의 삶은 불안하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불만을 해소할 대상을 찾는다.
  
  그것이 약자와 타자에 대한 불관용으로 나타난다. 구조조정의 피해자들이 자기 몫을 빼앗아 간 부자들을 공격하지 않고 바로 옆에 있는 약자들을 공격한다. 가장 손쉬운 표지가 인종과 종교다. 이렇게 하여 희생자가 또 다른 희생자들을 공격하는 악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박탈감에 휩싸인 불안한 인생에겐 분노와 절망만이 남는다. 정신적 안정성이 떨어지는 사람일수록 황폐한 환경에서 쉽게 부서진다. 그것은 폭력성의 표출이나 정신장애, 약물탐닉 등으로 나타난다. 폭력성의 표출로 범죄율이 높아진다. 특히 불특정 다수를 향한 증오범죄가 늘어난다. 증오범죄의 대상은 흔히 만만한 약자가 선택된다. 여성, 노약자, 어린이 등.
  
  한국사회는 기왕에도 불관용의 사회였다. 우리 사회의 인종차별 의식은 악랄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타자가 아닌 적어도 ‘우리’라고 인식하는 선에선 공동체 의식을 지켜왔다. 이것이 수구기득권 세력이 그렇게도 불평하는 한국인의 평등사상이다.
  
  미국식 시스템을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집권 민주화세력에 의해 그런 체제는 부서지고 있다. 국민 다수는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삶의 불안정 속에 떨어져버렸다. 더 나쁜 것은 소수는 저 하늘 위로 승천해버렸다는 점이다. 그들은 넘쳐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해 펀드상품을 찾아 헤매고 해외 투자처까지 뒤진다. 자식에겐 영재교육-특목고-일류대-유학 코스를 통해 황금으로 구입한 귀족 신분증을 안긴다.
  
  굶어도 다 같이 굶으면 기분은 안 나쁘다. 옆집 사람이 땅을 샀을 때 멀쩡히 잘 먹던 밥맛이 떨어지는 것이다. 자유화 개혁은 소수에게 부를 안겨주는 댓가로 국민다수에게 박탈감을 안겨줬다. 그것이 다수 국민의 분노와 절망을 부르고 있다.
  
  한국의 여론 지형은 극히 척박하다. 집권 민주화세력이 자유화 개혁 기조로 일관하는 동안 변변히 제동을 걸지 못했다. 주류언론은 미국적 가치를 신봉하는 집권 민주화세력더러 빨갱이라고 하는 판이다. 요사이도 양극화의 해소책으로 탈규제정책이 버젓이 주장된다. 시민의식이 생길 수 있는 토양이 아니다.
  
  한국 교육은 시민을 기르지 않는다. 입시기계만을 길러내 학벌신분을 걸러낼 뿐이다. 미국처럼 일류 사립학교들이 창궐하고 있다. 집권 민주화세력은 자사고 등을 만들어 미국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한미FTA로 교육을 시장판으로 만들려 한다. 그에 따라 교육은 붕괴해버렸다. 시민의식이 교육될 토양도 아닌 것이다.
  
  마치 미국의 못 사는 백인들이 KKK단을 만들어 자신보다 더 못 사는 흑인을 희생양으로 만들듯이, 그렇게 자신들의 질곡을 강화하듯이, 우리 한국인들도 희생양을 찾아 배회하고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란기에 독일인들이 유대인이라는 희생양을 찾은 것처럼.
  
  “우리 삶의 안정성이 파괴돼 버렸어! 누구 때문이지? 누가 우리 치즈를 훔쳐갔지? 누가 우리 삶을 공격하고 있지? 누가 우리 삶을 방해하고 있지?”
  
  박탈감과 절망이 클수록 분노도 커지고 공격의 강도도 거세진다. 그리고 그 공격은 만만한 대상에게 꽂힌다. 전통적으로 사회적 약자라고 여겨져 왔던 사람들. 하지만 약자 주제에 고분고분하지 않고 시끄럽게 떠드는 것들. ‘그것’들이 바로 마녀라고 언론이 선동한다.
  
  노조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얼마 전에도 전교조 조합원들이 국가보안법으로 긴급 체포됐다. 국민의 악감정을 등에 업지 않고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모두 자기의 삶을 염려하느라 공동체를 염려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각자 부자가 되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동안 공공적 시민의식은 실종되고 남는 건 이기심뿐이다. 이기심은 시민의식을 구축한다. 공동체의 일에 대한 통찰력이 사라진다. 당장 눈앞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것들에만 짜증날 뿐이다.
  
  페미니즘은 언론이 마녀라고 선동할 필요도 없다. 노조를 마녀로 만들기 위해선 민주화세력에 대한 약간의 세뇌작업이 필요하지만 어차피 남성권력사회였기 때문에 신참자이며 타자인 여성들이 밥수저 들고 뛰어드는 것에 대한 악감정은 아주 쉽게 공유된다.
  
  마치 서유럽에서 노동력 필요에 의해 이슬람인들을 데려다 썼다가 그들의 수가 불어나자 거기에 반발해 극우전선이 생긴 것처럼, 여성의 노동력이 필요했던 대한민국도 그에 따라 여성의 권익이 커지자 반발이 격심해지고 있다.(한국의 초기 자본축적은 여성의 희생(경공업)이었다. 청계천 시다를 기억하라.)
  
  노조나 여성운동에 대해 나타나는 인터넷 악플들은 본질적으로 그 성격이 같다. 대중의 배고픔, 배아픔, 불안감의 표출이다. 노조는 나를 빼돌리고 저희들끼리만 밥그릇 차지하고 있는 것 같고 여성운동은 내 밥그릇을 나누자고 달려드는 것 같다.
  
  그리고 한국사회 언론지형의 문제와 교육붕괴현상의 징후다. 교육이 시민적 사려나, 공공적 책무감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고 오로지 이기적 욕심만을 가르친다.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는 사회로 전락하고 결국 약자들은 희생양이 된다. 시민의식은 80년대보다도 퇴보해버렸다.
  
  마치 미국인들이 자신들이 강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에 의해 희생당하는 약자로 전도된 인식을 보이듯이 한국사회 남성들도 여성에 대한 피해의식을 보이고 있다. 여권신장으로 남성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주장은 인터넷 댓글 세계의 기본 메뉴다.
  
  구조조정의 엄혹한 칼날에 살아남은 소수 정규직 대노조를 못 봐주는 대중정서. 다 죽자 공격심만 남았다. “내가 죽을 지경이니 너도 당해봐라“ 모두가 서로에게 창칼을 겨눈 채 웅크린 고슴도치 같다. 웰빙열풍과 건강열풍, 사보험, 사교육, 재태크, 자기개발 광풍. 타자에 대한 공격과 자기배려에의 탐닉이 교차하고 있다. 남한사회 풍경이 스산하다.


2007년01월26일 ⓒ민중의소리


2007/08/24 15:41 2007/08/2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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