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라에를 기억하며... :: 2005/03/06 03:53

어제... 정확히 3월 5일 저녁 10시 20분에 라라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금... 무섭도록 담담합니다. 믿기지가 않아서 일까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일단 기록을 시작하려 합니다.




며칠전에 라라에를 병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방광염 증세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테라네가 한참동안 하루 종일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라라에는 꾸냥이와 테라에게 구박을 받으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둘의 타박에 못이겨 항상 구석에서만 지내며 맘껏 놀지도 못하는 정도였습니다. 거기다가 요즘 한동안 라라에의 보호막이 되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 큰 스트레스 였었나 봅니다. 겉으로 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듯 했었습니다. 많이 칭얼대고... 평소에는 오랫동안 숨어 있고요.

소변을 미리 받아가서 소변 검사를 했습니다. 염증이 조금 보이는 것 이외에... 피도 검출되지 않았고 pH도 정상이었으며 뇨비중도 정상.... 그 외 거의 모든 수치가 정상이었습니다. 안심을 했습니다.

의사의 권유로 초음파 검사를 했습니다. 어려운 검사가 아니기에 받아들였습니다. 검사 결과 요도에서 약간의 염증이 보였고 방광에는 별 이상이 없어 보였습니다. 결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른쪽 신장이 부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반면 왼쪽 신장은 정상 크기였습니다. 혈액 검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려했던 바와 달리... 혈액 검사 결과 역시 그다지 문제될 게 없었습니다. 신장질환을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는 크레아틴, BUN 수치 모두 정상이었습니다. 그외에 간기능에도 이상이 없었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담당 수의사님은 방광염만 고치는데에 집중하면 될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어있는 신장이 걱정된다고 물었지만... 식이 조절을 잘 하면 회복될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다른 검사 결과에서 신장기능이 특히 떨어진다거나 이상이 있다고 보이지를 않았기에 가볍게 여기셨나 봅니다. 저희도 그리 생각했고요.

포도당 수액을 한번 맞을 필요는 있다고 하여 포도당 수액을 맞은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주사도 한번 맞고 먹는약도 타오고요.

라라에는 빠르게 회복되더군요. 처음에는 수액 주사를 맞는 부분에 감아놓은 지지대가 불편해 보이는듯 했지만 조금 있으니 그 상태로 여기 저기 돌아다닐 정도록 금방 적응하는 듯 했습니다.

소변 보는데에도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밥도 잘 먹더군요.

그 다음날 다시 병원을 찾았습니다. 같은 처방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역시 빠르게 회복되는 듯 했고 그 다음날까지도 괜찮아 보였습니다. 평소에 즐기던 베란다 산책도 즐기고... 화장실 가는 문제도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 다음 다음날 다시 병원을 찾았습니다. 치료를 확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의사도 그리 권했었습니다. 수액을 몇시간 맞는것 이외에는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았기에 그리 부담될 것 같지도 않았고요.

이때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액을 맞으면서 오히려 기운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몸이 붓는게 보였고 호흡이 가빠지는게 보였습니다. 겁이 나서 수액을 바로 뽑았습니다. 이미 저녁이었기 때문에 다시 병원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다음날 바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갑자기 기운이 빠진 라라에를 보며 수의사도 당황하는 듯 했습니다. 소변 검사를 다시 했으나... 역시 소변 검사 결과에서도 염증이 조금 보이는 것 이외에 별다른 이상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초음파 검사에서 이상이 보였습니다. 왼쪽은 여전히 정상이었지만.... 부어 있던 오른쪽 신장이 정상보다 두배 이상 부어 있었습니다. 신부전을 의심했습니다. 수의사는 신부전이냐는 질문에 머뭇거리며 그냥 신장에 물이 차있다... 는 얘기만 했습니다. 몸이 붓는건 두 신장의 기능이 모두 비정상이고 혈액을 제대로 걸러지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일텐데... 소변 검사에서 별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혈액검사 역시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사실... 아마 수의사도 혼란스러웠었나 봅니다. 겉으로 보이는 증세를 봐서는 꽤 심한 신장 질환일텐데... 수의사가 확신을 못하겠는지 진단서를 써줄테니 서울대학 동물병원에 가보라고 하더군요. 정밀검사를 받아보라고... 진단서에는 소변 검사 결과만 적었습니다. 혈액검사에서 별 이상이 없었고 소변검사에서 염증이 보인것이 있었기 때문에 소변 검사만 적는 듯 했습니다. 병명도... '일단' 신장이 부어있으니 신장염이라고 적겠다고 했습니다. '일단'이라... 그러면서 이 얘기 저 얘기 끝에 안락사 얘기까지 언급하시더군요. 솔직히... 속으로 웃었습니다.

원인을 물었습니다. 처음 병원에 갔을때에도 바로 뭘 먹이냐고 묻기에 먹이는 음식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정도로 먹인다면 음식은 별 문제 없을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기생충 감염의 가능성도 언급하셨지만... 검사를 하자고는 안하시더군요. 누가봐도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을 테니까요.



이때....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주변사람들이나 이 홈피를 통해 여러번 밝힌적이 있었는데....

2001년 여름에 처음 라라에를 데려왔을때... 라라에는 새끼 고양이 둘을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옆구리에 커다란 십자 모양의 흉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라라에는 궁디팡팡을 싫어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가슴 아래쪽에 손 대는것을 싫어했습니다. 얼굴을 쓰다듬다가 손이 아래쪽으로만 내려가도 짜증을 내며 자리를 옮기곤 했습니다. 저희는.... 아마도 길에서 수컷 냥이들에게 시달림을 많이 받아서 그런가 보다... 했었습니다.

싫어하는 정도가 조금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라라에는 가슴 아래쪽에 손 대는것을 싫어했습니다.

고양이의 신장 위치는 갈비뼈 아래쪽 등쪽에 위치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은 신장은 '오른쪽' 신장이었습니다.


이 생각에 이르자... 겁이 덜컥 났습니다. 그리 오랜기간 동안 이것이 라라에의 성격, 혹은 과거의 나쁜 기억 때문이라고 생각했지.... 뭔가 질병에 관계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심한 외상으로 인해 신장에 염증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 오른쪽 옆구리의 커다란 상처가.... 이미 신장에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였을까요?

몸에 손대는걸 그렇게 싫어했던 것이... 이미 신장에 문제가 생겨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이 얘기를 들은 수의사 역시...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후로도 수의사는 원인에 대해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혼란스러웠겠죠.



서울대학 동물병원에 예약을 했지만 날짜가 2주후에나 잡혔습니다. 아픈 동물들이 많은가 봅니다. 어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라라에가 더욱 기력이 빠지는 듯 했습니다. 다시 다니던 지역 병원에 문의를 했더니 사정을 말하고 급히 가라고 하더군요. 다시 전화를 했지만 이미 진료시간이 끝난 상황이었고 응급실로 데려가 봤자 당직 수의사들만 있기 때문에 정밀 검사도 불가능하고 수액을 맞추는 이외에는 별 수가 없다... 고 하더군요. 할 수 없이 전화로 증세를 설명하고 상담을 했습니다. 증세를 한참 설명하고 근 30분 가량 통화를 했지만... 이 수의사 역시 아무런 확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신장기능에 이상이 있어보이기는 한데 소변, 혈액검사 결과와 맞지 않는듯 하고... 게다가 증세로 봐서도 신부전증은 아닌것 같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사실 별다른 증세도 없었습니다. 첫날 방광염 증세 이후로 별다른 증세가 없었고 상황이 나빠지기 직전까지만 해도 체력이 조금 떨어져 보이는 것 이외에는 겉으로 봐서 별다른 증세가 없었으니까요. 어제 저녁과 오늘만 빼고요.



다시 지역 병원에 문의를 했습니다. 이때는 라라에의 복부가 많이 부어있는 상태였습니다.

역시 한참을 상담하고... 일단 데려와서 주사제라도 맞추자고 하시더군요.

수의사가 보더니.... 복수가 찬 것 같다고... 엑스레이를 찍자고 했습니다. 복수가 찬 것이 보였습니다. 신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에 혈액의 농도에 문제가 생겨서 삼투압 때문에 혈관에서 세포로 수분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생기는 증세라고...

그렇다면 신장에 이상이 있는게 확실한데... 소변, 혈액 검사에서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이니 신장기능에는 문제가 없는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렇긴 하다고 답하시더군요. 뭐가 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혈액검사를 다시 하면 안되겠냐고 물었습니다.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직전에 검사를 했었고... 설사 검사해서 이상이 발견되어봤자 할수 있는 처치도 없고(신장이 안좋아서 약이 안 받는 상황이었기에) 어차피 월요일에 서울대학 병원으로 가면 다시 검사를 할테니 하지 말자고 하시더군요. 그리고는 음식을 먹으면서 기력을 회복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수의사는 이미 포기한 듯 했습니다.


병원을 나서는데.... 갑자기 수의사가 원인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오기 직전에 저 역시 자료들을 찾아봤지만.... 신부전 증세와도 그다지 일치하지 않는 것 같고... 혹시나 싶어 범백혈구 감소증이나 복막염 증세를 찾아봤지만 이 역시 일치한다고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수의사가 복막염의 가능성을 말했습니다. 복막염으로 인해 신장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복막염? 그렇다면 우리에게 오기 전에 복막염 증세가 이미 시작된 상태였고 2년 6개월 동안 아주 서서히 병이 진행되어 이제서야 갑자기 심각해진 것? 과연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요 근래에 복막염에 걸린것일까요? 요 며칠 병원에 다닌 것 이외에는 밖에 다닌 일도 없었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복막염 검사를 하자고는 안하시더군요. 역시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지는 않은듯 했습니다.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지만...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서... 점점 기운이 빠져가는 라라에를 보았습니다. 몇걸음 걷던 걸음 걸이도 차차 줄어들더니... 곧 걷지 못하게 되버렸습니다. 자리에 누운상태로 조금씩 기어가더니 그 자리에서 오줌을 싸더군요. 기어가던 방향은 화장실 방향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찬 바닥에 누워서... 가끔씩 다리를 움직이며 자세를 바꿔 잡을 뿐 움직이지를 않았습니다.

기력이 점점 빠지는지... 자세를 바로잡지도 못하기 시작했고.... 고개를 점점 땅에 붙이는 시간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라라에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실감하지 못했지만... 수의사가 안락사를 언급해도 비웃었지만.... 급격히 변해가는 라라에를 보며 실감해야만 했습니다.

완전히 바닥에 누워버린 라라에를 보며... 갈피를 못잡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보내야 하나? 아니면 살 수 있다고...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어야 하나?

뭘 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으면 나쁜 생각만 계속 떠올라서 집안일을 시작했습니다. 라라에는 옆에 두고 보고 있었습니다.

이름을 부르면 평소처럼 꼬리를 살짝 흔들어 주었습니다. 비록 그 폭은 작았지만...


문득... 이렇게 라라에를 바닥에 뉘여 놓고 있다가 라라에의 마지막 순간을 놓치게 되는 것이 두렵다고 느껴졌습니다.

기운이 빠져 축 늘어진 라라에를 가슴에 안았습니다. 라라에의 호흡이 느껴지자... 오히려 불안감이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십분 정도가 흐른 후에... 큰 숨 몇번, 작은 떨림이 이어지고... 라라에의 호흡과 제 호흡이 일치하는 듯 느껴졌습니다. 라라에의 호흡이 멈췄습니다.

눈물이 터져나왔지만... 이상하게도 침착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라라에를 닦아줘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수건을 챙겨오고... 라라에를 묻어줄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아주 신속히...

그리고는 근처 산에 라라에를 묻었습니다.





지금은 제 자신이 너무나 무섭습니다. 너무나 담담히.... 마치 남 얘기를 하듯이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실감을 못하기 때문일까요?

가끔씩 가슴이 터져오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이 폭발을 억제하고 잠시 흐느끼고 말 뿐입니다.

감정을 터트려 감정을 해소하려 하지 않고 감정을 쌓아두는 것에 익숙하게 살아온... 그런 남자라는 것이 참 싫습니다.



그렇게 빨리... 라라에를 보내고 라라에를 묻고...




원인을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정밀검사도... 서울대학교 동물병원도 다 소용 없게 되버렸습니다.





라라에를 보내며 고마웠다고.... 사랑한다고.... 그리 말했습니다.

하지만... 라라에가 사랑해준 만큼 라라에를 사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라라에의 외로움을 달래주려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너무.... 너무 미안합니다.

2005/03/06 03:53 2005/03/06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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